+ Book review 책소개2018. 11. 23. 21:44












이종관, 박승억, 김종규, 임형택 (2013). 디지털 철학: 디지털 컨버전스와 미래의 철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디지털 철학』: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고찰

Three philosophical agendas for digital marketing


주제어: 디지털마케팅, 디지털 철학, 디지털 미디어, 브랜드 커뮤니티, 감각마케팅


By 박경재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 동시대의 철학은 동시대의 광고와 마케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018년 현재,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는 일상 속 대화에서부터 대중매체에까지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지금 이 순간의 인생을 즐기고 사랑하자는 의미의 욜로는 니체가 주장한 운명애(amor fati) 사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단어이다. 1900년에 죽은 니체의 사상이 2018년 지금 우리나라 2030의 생각이 되었다는 말이다. 만약 니체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면 아주 성공한 카피라이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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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번 뿐이고, 갈 곳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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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발명되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우주라는 단 하나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명되고 인류는 디지털 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신이 현실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면, 인간은 디지털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현실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않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찾기 힘들며,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읽은 『디지털 철학』은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현상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국내의 몇 안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필자는 광고홍보학을 전공으로 배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철학에도 관심이 있어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고 있다. 3년 동안 철학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실세계에서)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디지털마케팅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세계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철학의 질문인 동시에 마케팅의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해에서 소비자 인사이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철학』은 디지털 광고나 마케팅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 볼 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주된 내용은 디지털 컨버전스와 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디지털 컨버전스의 역사부터 시작해 디지털 미디어에서 인간은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디지털 시대에 맞춘 미래의 철학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제언으로 끝난다. 이 글에서 책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광고홍보를 배우는 미래의 디지털 마케터로서 생각해 볼 만한 토픽 몇 가지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디지털에서의 감각 마케팅


디지털 세계는 현실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재현하려고 한다. 이미 영화의 배경은 CG로만 채워지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어디까지가 진짜며 어디부터 CG인지 구별할 수 없는 기술까지 이르렀다. 가상현실 기술이 시각과 청각을 중심으로 진짜인 것 같은 가짜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의 보다 더 근원적인 감각인 촉각에 주목한다.

 

만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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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그런 체험이 단지 시지각의 환상으로만 여겨진 까닭은 마치 우리가 신기루를 잡기 위해 손을 휘젓는 것처럼 좀 더 기초적인 감각, 즉 촉각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p. 165).


현대의 기술이 아직까지 촉각까지 재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가상현실을 진짜 같지만 결국엔 가짜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실재성’은 촉각에 기초한다. 만질 수 없는 가상현실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이 일상화되면서 인간이 더욱 촉각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짜가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진짜를 원한다. 시각과 청각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으니 촉각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신체적인 접촉이 이루어져야만 채워질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이 주목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오프라인 체험형 마케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마케터로서 디지털에서와 오프라인에서 각각 어떤 브랜드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 텍스트 문화와 브랜드 커뮤니티


최근 디지털 마케터들이 주목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 커뮤니티다. 책에서 말하는 디지털 부족 문화라는 용어는 결국 마케팅에서 쓰이는 브랜드 커뮤니티와 같다. 부족 문화는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서 다시 부활한 것인가? 근대 이전 인간은 부족을 이루며 살았다. 부족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정체성을 공유하며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교통과 인쇄술의 발달로 국가가 탄생하면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부족 문화는 사라져갔고 중앙 집중형 권력과 획일화된 문화가 강조되었다.


인쇄 활자 문화에 기초한 근대 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문화였다. 반면 디지털 텍스트 문화는 근대 이전의 부족 문화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구어적 문화는 의사소통 조건의 동질성을 확보한 사람들끼리 새로운 부족 문화가 트렌드화할 가능성이 높다 (p. 182).


필자는 브랜드 커뮤니티를 포함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보완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획일화’를 강조한 근대 철학(모더니즘)의 흐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한계점이 드러났다. 그 결과로 인해 태어난 사조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더니즘 이후의 철학 · 문학 · 사회학적 경향을 말한다. 모더니즘의 한계점을 비판하며 등장했기 때문에 모더니즘의 ‘획일화’라는 키워드를 거부하고 개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우리는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개인에 맞춰진 시대에 살고 있다. ‘나’와 ‘너’의 다름이 인정되고, ‘나’에게는 틀려도 ‘너’에게는 옳을 수 있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 방식은 상대주의를 넘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무너지는 허무주의적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인간 역시도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한 집단에 소속되어 얻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디지털 문화가 만나 탄생한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로 남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순기능이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스스로 모여 가치 판단의 기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족 문화인 브랜드 커뮤니티를 잘 활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핵심 화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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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로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속감’과 ‘동질성’이라는 본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단지 같은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소속감’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가 지니는 가치관까지도 공유하는 ‘동질성’까지 있어야 진정한 브랜드 커뮤니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브랜드 커뮤니티가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를 꿈꾸는 소비자들의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소비자 변화의 두 경향 : 트랜스휴머니즘과 네오휴머니즘


디지털 시대에서 소비자들은 어떻게 변화할까?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변화가 더 격변적일 것이라 생각해본다면 디지털 소비자들의 변화상을 예측하는 일도 마케터에게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책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삶의 변화를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디지털 혁명이라는 큰 변화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양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트랜스휴머니즘과 네오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p. 352)


트랜스휴머니즘

네오휴머니즘 

  • 모빌리티와 유비쿼티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기능적 상품과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경향의 증가
  • 고도로 분화되고,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 문화에 대한 의존성 증가

  • 디지털 표류자(digital herd)로 일컬어지는 계층의 등장: 끊임없는 연결과 방향성의 변동 상황에서 표류함으로써 동기와 목적이 불투명한 의식과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등장

  • 디지털 네트워크의 개방성을 사생활의 소멸과 같은 부정적 현상으로 인식함으로써, 폐쇄적 자아공간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등장
  • 디지털 문명의 기계적 차가움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하이터치적 문화 트렌드, 예컨대 실물과의 접촉을 추구하는 문화 트렌드 등장

  • 사이버 범죄 등 반-네트워크적 행위의 증가와 그에 대한 자아의 세계를 지키려는 프라이버시 의식의 강화

  • 이른바 ‘디지털 자아(Digital Me)’와 ‘실존적 자아(Self)’를 혼동하는 분열증적 문화의 등장
  •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컨버전스로 인한 양 영역 간 경계의 증발

  • 디지털 격차로 인한 문화적 계층의 분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발전된 과학 기술이 주는 혜택을 향유하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인간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에 연결되고 싶은 모빌리티와 유비쿼티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경향이라고 보면 되겠다. 작용이 있다면 반작용도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비해 네오휴머니즘(neo-humanism)은 디지털 시대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인간성을 다시 회복하자는 움직임이다. 


표에 나와있는 ‘하이터치적’이란 용어도 ‘하이테크’에 반대해 나온 개념인데, 기술 문명 시대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찾는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양극단의 경향을 설명한 것이므로 현실적으로는 한 개인이 트랜스휴머니즘적인 경향과 네오휴머니즘적인 경향을 동시에 지닐 수도 있겠다.


트랜스휴머니즘과 네오휴머니즘이라는 양극단이 마케터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선, 이 둘은 시장의 심리적 세분화(psychographic segmentation)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사 브랜드의 타겟 소비자를 분석한 결과 트랜스휴머니즘적인 경향이 높다고 판단되면, 디지털 미디어 중심의 캠페인을 기획해볼 수 있겠다. 반대로, 타겟 소비자들이 네오휴머니즘적인 경향이 높다면 오프라인에서의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겠다. 


 

디지털 시대에서 필름 카메라를 찾는 것 역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작용과 반작용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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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마케터로서 ‘디지털만, 모바일만(digital only, mobile only)’이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자칫하면 디지털 마케팅으로만 브랜드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소비자는 트랜스휴머니즘적 경향뿐만 아니라 네오휴머니즘적 경향도 가지고 있으므로 디지털 미디어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을 강조하는 ‘O2O(online-to-offline) 마케팅’ 역시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라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자아(digital me)’와 ‘실존적 자아(self)’의 혼동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자아(self)’라는 개념은 이미 브랜드커뮤니케이션에서 많이 연구가 된 주제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브랜드는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이고, 소비자들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 해당 브랜드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서, 디지털 시대에는 온갖 종류의 디지털 자료에 의해 규정되는 ‘디지털 자아’도 존재한다. 


‘디지털 자아’와 ‘실존적 자아’의 혼동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아주 쉽게 겪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의 ‘나’와 현실 세계에서의 ‘나’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에서는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를 통제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통제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디지털 자아’는 소비자 개인이 추구하는 ‘실존적 자아’의 이상향이 되곤 한다. 마케터는 소비자의 ‘디지털 자아’를 분석해 그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브랜드에 담아낸다면 ‘디지털 자아’와 ‘실존적 자아’의 간극을 줄여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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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발명한 기술일 뿐이며,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케팅은 기술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 시대에서 필름 카메라를 찾는 감성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을 기술적으로 다룬 책은 많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은 별로 없다. 


정해진 답이 없는 마케팅의 세계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 궁금하다면 읽어볼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Posted by CAU adpr digital